정치 정치일반

[생생 정치 인사이드] 국회의원 법안발의 늘었다는데..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4.21 17:07

수정 2013.04.21 17:07

[생생 정치 인사이드] 국회의원 법안발의 늘었다는데..

흔히 정치는 생물에 비유된다. 그만큼 모범답안 없이 복잡다단하다. 하루에도 오전에 다르고, 오후에 또 달라지는 등 변화무쌍하다. 파이낸셜뉴스는 다양한 정치현안을 비롯해 경제정책, 각종 민생법안 등 주요 의제들을 놓고 벌어지는 여야 간 또는 정치권과 행정부 간에 벌어지는 '뒷얘기'들을 소상히 전달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이려고 한다. 또 청와대와 여야, 각당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정치현안과 얘기들을 생생하게 그려보려한다. 새롭게 선보이는 '生生 정치 인사이드'는 앞으로 매주 월요일자에 게재된다.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가 급증 추세다. '일 안하고 노는 국회의원'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의정활동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의원 법안 발의 숫자가 늘어나는 반면 쓸만한 법안은 오히려 줄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안 발의가 양적으론 늘었지만 질은 떨어지고 있어 과잉 남발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1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법안 가결률(의원발의+정부제출 포함)은 16대 국회 당시 38%(제출 2507건, 가결 948건)였던 것이 17대 국회 들어 26%(제출 7489건, 가결 1915건)로 줄었다가 지난 18대 국회 때는 17%(제출 1만3913건, 가결 2353건)로 급감했다.

특히 국회 의원발의를 지원하기 위해 국회 입법조사처가 가동된 17대부터 법안발의가 늘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반면 가결률은 줄어들면서 의원들의 과잉 불성실 법안 준비가 도마에 오르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적위주·날림용' 법안 발의

의원 법안 발의가 의원 간 실적 챙기기 경쟁으로 변질되면서 입법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우선 17대 국회부터 시민단체(NGO) 등이 의정활동 평가기준으로 법안 발의 건수를 넣기 시작한 게 의원들의 양적 법안 발의 배경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평가 취지는 좋으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법안 과잉 남발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진 것.

새누리당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발의 건수로 평가가 시작되면서 의원들이 외부 눈치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면서 "법안 발의 건수가 늘어난다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며 제대로 심사가 이뤄지지 못하는 등 사회적 비용 부담도 따르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학을 전공한 경우 월 20∼30건 이상 법안 만드는 것도 솔직히 가능하다"면서 "법이 자주 바뀌면 국민의 기대 혹은 예측성이 깨져버리고 국민적 합의 없이 법이 자꾸 개정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초선의원실 보좌관은 "초선의원은 아무래도 열심히 의정활동을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법안 발의에 눈치를 보게 돼 있어 지난해 많은 고심을 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불필요한 보여주기식 법안들을 양산하지 말고 사회에 제대로 의미를 주는 알맹이 있는 법안에만 충실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의원 평가 시 법안 발의 건수를 따질 경우 꼼꼼히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정안과 개정안의 경우 이를 구분해 평가점수를 매겨야 한다는 것. 민주당 재선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이 의원정보시스템에 보면 '대안폐기'라고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대안으로 합쳐져 통과된 걸로 봐야 한다. 그런데 법안을 평가하는 시민단체에서 이를 '폐기'한 걸로 오해한다"면서 "법률 제정안 1건은 개정안 100건에 해당하는 비중으로 판단하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항의했다.

■전문성·예산 없는 입법조사처

국회 입법조사처와 국회사무처 간 미묘한 권력 관계도 국회의원 의정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05년 국회입법조사처 법안의 최초 제출 당시엔 입법조사처에 인사권과 예산편성권을 부여토록 추진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입법조사처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전문성을 확보한 인원을 뽑아 쓰도록 지원하기 위한 조치다.이에 당시엔 입법조사처 인력을 '행정조직 20%, 연구조직 80%'를 목표로 추진했는데 당시 국회 운영위 심사과정에서 이런 조항이 모두 빠져버리고 인사권(추천권, 임명권 등)과 예산권이 모두 사무처로 다 넘어갔다는 지적이다. 모 의원실에서는 입법조사처의 전문가와 비전문가 비율이 60대 40에서 최근 40대 60으로 역전까지 됐다고 전했다.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입법조사처장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고 국회 사무처는 조사처를 자기들 하부기관으로 여기면서 중앙부처에서 산하기관 파견처럼 자기들 자리로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국회의원회관 의원실 관계자들 사이에 입법조사처에서 처리하는 업무에 대한 불만이 일고 있다. 최근 의원실 보좌관들 중에 석·박사 출신 등 전문가들이 늘면서 입법 질의 수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반면 입법조사처의 회답 내용은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실의 질의에 회답을 못하는 비전문가들이 꽤 많다"면서 "사무처 입법고시 출신들이 조사관으로 파견 나와서 근무를 하는데, 그들이 실력은 좋지만 전문가는 아니어서 쓸데없는 자료들이 들어오면 재요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18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회 입법조사처 업무보고에 참석한 의원실에 따르면 국회사무처의 인사권한과 전문성을 인정받고 들어온 조사관들 간 갈등 문제도 일부 서면질의 등을 통해 도마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질 높이기 위한 지원책 시급

의원 법안 양을 제어하기보다 이제부터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우선 입법조사처의 인력 확대와 전문성 강화 및 인사·예산권의 독립이 시급한 과제라는 지적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올해 19대 국회 개원 이후 의원들의 입법조사 요구 건수는 월평균 540건에 이른다. 개원 이후 이달 중순까지 회답한 건수는 5200건에 이른다. 연간 4000건 하던 회답 건수가 올해는 6000건으로 급증할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전문성 있는 인력으로 입법조사처 직원 비중을 대폭 늘리고 외부에서 수혈한 인력에 대한 신분 안정화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은 이번주께 '국회입법조사처법안' 개정안을 대표발의할 예정이다.

유 의원은 "입법조사처 연구위원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신분 보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울러 입법조사처의 직무를 비롯해 조직구성 및 예산편성에 독립성이 최대한 존중되도록 하는 방안도 담는다는 계획이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이유범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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